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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예수님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니면 하나님 자체이신가? 예수님이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하셨으면서 왜 또 기도하실 때는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는지, 이 부분은 전에 잘 이해가 안 되고 고민스러웠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어떻게 정확히 알게 되었는지 공유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여기에서 확실한 답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딸과 함께 성경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
열 처녀의 비유 —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될 수 있는가 슬기로운 처녀의 비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
구원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신 구원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구조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부자의 구제도 아니고, 병자에 대한 의사의 생명구조 혹은 치료도 아니고, 어떤 자선기구 혹은 선량한 사람의 행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타락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예비한 것으로, 이 구원 속에는 오직 진리, 길, 생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구원을 얻으면 우리의 가정, 공부, 일, 삶에서 더 이상 고통, 눈물, 슬픔, 갖가지 힘든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며, 우리의 인생은 빛과 행복으로 충만해지고, 삶은 더욱 목표와 의의를 갖게 되며,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일생 중,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구원..
예수님의 성품에는 긍휼과 자비만 있는가 ‘예수님’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충만한 사랑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는 친히 인간 세상으로 와서 인류를 구속했고, 무고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는 전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누가복음 1:78~79) 주님께 구원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내리신 충만한 은혜를 누렸고, 주님께서 가져다주신 평안함과 희락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은 영원히 자비와 긍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을 믿어 온 저 역시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습..
계시록 22장에 “이것들 외에 더하면” “제하여 버리면”은 무엇을 뜻하는가 좁은 골목길에 “뛰…뛰…뛰…”하고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자동차 경적 소리가 생각에 빠져 있던 수민을 깨웠습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아침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느라 뒤에서 오는 차를 가로막고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사과하고 몸을 돌려 차가 지나가게 했습니다. 남겨진 것은 그녀의 왜소한 그림자 뿐이었고, 느린 발걸음은 마치 겨울날의 혹독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교회는 점점 황량해지고, 형제자매들의 믿음과 사랑 또한 점차 식어갔습니다. 그녀 자신도 영 안이 점점 어두워지고 연약해지는 것을 느꼈고, 여러 번 예수님께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어도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아마 다들 성경에 적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다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곧 강림하실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아낙네였고 많은 성경 지식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3년 반에 걸쳐 사역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과 짧은 만남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았으며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더더욱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
당신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갖추었습니까 당신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갖추었습니까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올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
안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안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안식의 유래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태초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질병의 고통도, 노동의 수고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근심 걱정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