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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간증/삶의 깨달음

행복한 인생을 얻는 길

 

    결혼한지 몇년차에 접어든 그는 직장인 입니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고 자식도 영리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할 수밖에 없어 그는 인생이 정말 막연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한 사람, 중년인 그는 화이트 칼라입니다. 먹고 입을 근심이 없지만 승진과 더 많은 연봉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잔업을 해야 했고 접대가 많아서 제시간에 퇴근도 하지 못해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칩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말년에 이른 부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떳떳하고 부러워 할지 모르지만 재산을 놓고 서로 다투는 자녀들 때문에 말년의 그는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삶은 다른 인생 경험을 가져다줍니다. 서로 다른 인생 경험은 또 서로 다른 고민과 쓰라림이 따르게 됩니다. 사람은 다 완벽하길 바랍니다. 가족이 화목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명예와 재물을 함께 얻어서 마음이 충실하길 바랍니다.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 불만과 유감을 가지며, 어느날 세 사람은 만나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은 화이트 칼라의 안정된 직업을 부러워했고 화이트 칼라는 부자가 사업에 성공한 것을 부러워합니다. 부자는 직장인의 가정이 화목한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다 생활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행복한 인생을 얻으리라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직장인은 윤택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임 장소에 잡혀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어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이트 칼라는 사업에 성공한 사장님이 되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사람에게 속아 재산을 빼앗길까 봐 경계하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들은 그의 제삿날에야 산소에 가서 꽃바구니를 차려놓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대다수가‘직장인, 화이트 칼라와 부자’중의 한사람이 아닐까요? 가난할 때는 안일한 생활을 동경하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하여 아무 근심이 없을 때는 큰 부자가 되길, 그러나 정작 큰 부자가 되고 나면 더 깊은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제비는 가을에 날아갔다가 봄이면 다시 돌아옵니다. 푸른 풀은 겨울에 시들었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몇년, 십여 년, 혹은 몇십 년동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합니다. 짧은 시간에 목숨을 걸고 금전, 지위, 감정, 혹은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는 물건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우월한 물질적 향락을 누릴 수는 있어도 마음의 평안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지위는 우리의 허영심을 일시적으로 채울 수는 있어도 마음 속의 고독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육체 관계를 잠시 유지할 수는 있어도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얻는 길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몇 단락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이 하나님의 명정 가운데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고, 또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하나님이 없는 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날,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의의가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적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에게 깊이 반성하게 하는 이 말씀을 보고 갑자기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을 깨닫게 된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출생, 성장, 가정,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는 다 조물주의 손 안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고, 사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을 다 합당하게 안배하셨습니다. 사람이 한정된 시간 내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그건 시간과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고, 남는 것은 공허함과 고통 뿐입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재된 욥에 대해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일생 동안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반듯한 아들 딸을 베풀어 주었고, 엄청난 재산과 많은 하인과 가축을 베풀어주었지만 그는 안락한 생활 속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대적할까 봐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이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욥은 확실히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 진리를 실행했습니다. 욥기 1장 21절을 보면, 후에 사탄의 시험이 닥쳐 모든 자녀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서 아내와 친구들의 조소와 조롱을 당했지만 욥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면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재산, 감정, 명예를 잃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어도 이전과 다름없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는데, 사람이 세상에세 살아가면서 수명이 길든 짧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의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복을 받든 화가 닥치든 신경쓰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몇 배의 축복을 다시 받게 된 것입니다. 더 좋은 자녀와 몇 배가 되는 재산을 얻었고 천수를 다 누릴 수 있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도(道)를 실행하여 마음속에 편안함과 평온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욥의 후반생은 계속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 속에 있었고, 더 이상 사탄의 침입과 방해가 없었으며, 그는 완전히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고뇌하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큰 돈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전, 미녀, 명리와 육체를 자극하는 것들이 사람에게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아 아직도 지위를 갖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는 사람,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주목받고 떠받들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리를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점점 모든 인격과 도덕을 상실하게 되고, 진정한 친구를 다 잃게 되며 주위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이 당신이 원하는 생활입니까?

    사람은 일생 가운데서 사탄의 시험에 자주 직면하게 됩니다. 금전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지위든 권세든 다 충분히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진리의 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주 사탄의 시험에 빠집니다. 사악을 숭배하는 원인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행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 사역을 많이 하거나 좋은 행실이나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만 중요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어놓고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상고하고 실행하는 것에는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욥처럼 살면 어떨까요? 금전과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무슨 일이 닥치든 자기의 애호와 욕망과 상상대로 맹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나날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점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고 진리가 자기 생존의 근거와 생명이 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이 만족스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게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입니다. 제가 금방 본 아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늘 표면에서, 도리상에서 떠다니고 안으로 실행하지 않으며 안의 각종 정형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언제나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진리가 너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사실이다……네가 믿음이 있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명이 부지중에 너의 생명이 된다. 이렇게 부지중에 너의 이 생명 안에 곧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의 요소가 있게 되고 이런 실제가 있게 되고 이런 살아 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지 않겠는가? 네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으면 너에게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케 하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희망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아무런 난이도도 없다.』